1. 어쩌다 보니 일본여행 리뷰보다는 체류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먼저 적게 되네요. 서서히 여행기도 쓰겠습니다. 일본이나 일본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철저한 준비성이죠. 우리가 상상 못한 작은 일에도 섬세하고 치밀하게 신경쓴 흔적을 보면서 참으로 많이 놀라고 온 4주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빨리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겠지요.


2. 일본집은 대부분 아주 부자가 아닌 이상 적정한 크기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보통 중산층 주택가의 경우 아담한 사이즈의 2층집이 많다. 마당을 예쁘게 꾸며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절로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다. 도쿄가 아열대성 지리에 위치해 있는지 집집마다 미깡(여름 귤)나무가 많아 놀랐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열매가 달려 있고 나뭇잎이 무성한 걸 보면서 왜 일본에 미깡이나 귤 종류의 수확량이 풍성한지 이해가 간다. 


3. 일본은 습기가 많아도 너무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 한여름에 해당되는 습기가 일본은 초봄부터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인지 우리 눈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일본에 사는 게 진짜 힘들어 보인다. 습기가 많으니 자연히 빨래가 안 마를 수 밖에. 가정집에서도 비가 많이 올 때는 동네 코인세탁기에 가서 드라이를 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반 가정집의 경우 드라이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선 베란다의 기능이 엄청 중요하다. 베란다엔 샤시가 없다. -창문마다 샤시를 설치하고 바닥 보일러 시공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 같다.- 지진을 감안해서라고. 베란다 창문까지 깨지면 진짜 심각한 상황이 되니까. 탈출시에도 걸림돌이 된다. 조금만 날이 좋아도, 아니 비만 안 오면 각 집의 베란다마다 빨래가 가득가득 널려 있다. 어떻게든 습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바람으로 말리고 싶기 때문이다.


4. 처음엔 베란다에 까마귀가 출몰한다고 해 빨래널기도 망설였는데 일본에 오래 산 사람들은 전혀 신경 안 쓴다. 일단 빨래 말리기가 시급한 일이라서. 그런데 한참 지나서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베란다의 비밀이다. 집 크기에 따라 당연히 베란다 크기도 차이가 난다. 개인주택은 주택대로 비상구가 따로 있을 것이고 아파트나 빌라 등도 베란다가 작던 크던 간에 반드시 설치돼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베란다 바닥에 설치돼 있는 정사각형 합판이다. 크기가 딱 세탁기 놓을 자리다. 당연히 세탁기 지정판인 줄 알았다.

일본은 왠만하면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금년 봄에만 유독 추웠다는데 전 세계적으로 그랬다. -유럽은 더 심했다고, 6-7월까지도 여름 기운이 거의 없었다고.- 그래서 대부분 세탁기가 베란다에 있다. 우리나라는 베란다에 샤시가 있어도 베란다에 놓인 세탁기가 겨울엔 어는 집이 많다. 샤시가 없는 일본인데도 여지껏 겨울에 얼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고, 그것도 다 찬물 세탁기다. 아주 부잣집 아니고는 대부분 찬물 기능만 있다고 들었다. 세탁기에 애초부터 온수 기능이 달려 있지 않아 놀랐다.

 


5. 대부분 좁은 평수의 집이라 좁은 베란다에 세탁기를 놓고 나면 사실상 남는 공간이 없다. 빨랫대 설치할 공간도 없는 베란다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다들 세탁봉이나 빨랫줄을 이용해 잘만 널더라. **세탁기 놓는 자리인 줄 알았던 정사각형 합판이 알고 보니 바로 피난통로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에야 눈에 띄였던 영어와 한자 -Emergency(비상통로)와 피난처(避難處)- 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합판도 녹슬어 글자가 희미한 탓에 몇 주를 보면서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원래는 그 자리에 세탁기를 놓으면 안되는 거다. 말 그대로 피난통로이자 비상구이기 때문에. 지진 등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아파트 같은 경우 높은 층은 더 위험하니까. 곧바로 그 합판을 들어올린 다음 밑으로 연결돼 있는 통로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딱 한 사람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제야 위를 쳐다보니 윗층 베란다 밑부분에 똑같은 재질 똑같은 크기의 비상구가 보인다. 하지만 똑같은 위치는 아니다.


6. 층수마다 배수구(혹은 치안문제)를 고려해 비상판 위치도 달리 한 것 같다. 정말로 치밀한 사람들이다. 그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미리 그런 사실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지만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요즘 일본방사능 때문에 계획된 여행이나 방문 등을 취소하는 분도 많고 아랑곳않는 분도 많고, 착잡하네요. 

그곳에 사는 분들은 오히려 조용하기만 하고 이럴 때일수록 자신만의 뚜렷한 소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 조금만 살다와도 참으로 매력 넘치는 나라이고 어느 나라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개인 또한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라 여기서 생각하던 선입관과는 180도 다른 상념에 젖게 됩니다. 그래서 더 요즘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고요. 모든 게 속히 제 자리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